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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용 블로그

본 대본의 저작권은 KBS 사극 드라마 추노에 있으며 저작권 문제시 본 포스팅은 수정 및 삭제 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혜원의 집 별당 /

노리개를 꼭 잡는 혜원.

 

이사과 잊어라. 기억이 많으면 슬픔도 많은 법이다.

 

혜원, 대답이 없다. 이사과도 시선을 돌려 먼 하늘만 바라본다.

격조있는 음악이 흐른다.

 

혜원의 집 마당 /

큰 부자는 아니지만 나름 살림의 규모가 느껴진다.

초례청 마당에는 차일이 드리워졌고 화려한 혼례상을 둘러싸고 고을 아낙들이 모여 있다.

혜원이가 두 명의 시종의 부축을 받아 초례청으로 들어온다.

 

[인서트] 문방구

방화백이 다 그린 용모화에 부채질을 하는 한 편 입 바람을 후~ ~ 분다.

얼굴을 한 번 문질러 보고 물감이 묻어나지 않자 대길에게 준다.

대길이 용모화를 곱게 말아 품속에 넣는다.

 

아낙들이 혜원의 고운 얼굴을 보고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아낙1 아유~ 곱네 고와. 국색이 따로 없어.

아낙2 양귀비가 울고 가겠네.

아낙3 신부 나이가 많다며?

아낙1 애를 낳았어도 너댓은 낳았을 나이지.

 

아낙들의 수다를 뚫고 인물 훤칠한 신랑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들어온다.

아낙들 역시 신랑 인물을 보고 술렁인다.

신랑은 부채로 가린 얼굴이지만 웃음기가 그대로 보인다.

 

[인서트] 저자거리

번잡한 저자를 걸어가는 대길. 지나는 여자들의 얼굴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바라본다.

 

혜원의 집 별당 /

까무룩한 등잔불 아래 다소곳이 앉아있는 혜원.

옆으로 조그마한 다담상에 술과 안주 등이 차려져있다.

 

[인서트]

- 산 속에서 혜원의 나물 바구니를 대신 들어주는 도령 대길.

- 후원에서 혜원에게 연애편지를 주는 대길.

- 부엌에서 편지를 보는 혜원... 하지만 글을 읽을 줄 몰라 난감하다.

- 청계천 다리 아래, 대길이 혜원에게 언문을 배운다.

 

혜원이 쓸쓸한 웃음을 짓는다.

 

혜원의 집 별당 밖 /

신랑이 별당 마당으로 들어선다.

앞서 청사초롱을 든 머슴이 마당에 모여 짓궂은 얼굴로 기다리는 아낙들을 좌우로 헤친다.

 

머슴 길을 트시오~ 새신랑 듭시오~ 길 트시오~

 

아낙들이 신랑 얼굴 보며 저마다 품평회를 하는데,

 

아낙1 인물 보세. 깎은 밤이 따로 없네.

아낙2 어이구, 저 코 큰 것 좀 봐. 새색시 밤 새 한 숨도 못자겠어.

아낙3 옆집 김서방 코가 더 커보이는 법이야.

아낙1 이보, 새 신랑. 주먹 크다고 싸움 잘하는 거 아니우. 동서남북 인사를 잘 해야지.

 

걸죽하게 웃어넘기는 아낙들.

새신랑이 아낙들의 희롱 섞인 말을 못들은 척 피한다.

드디어 마루로 올라서고, 머슴이 댓돌 위에 병풍을 두르는데,

 

아낙1 에이그, 그걸 뭐하러 둘러. 어차피 쫌 있다 엎어질 거.

아낙2 원래 첫날밤은 문 열어놓고 치르는 법이야.

 

아낙들의 웃음소리가 별당 마당에 가득하다.

 

혜원의 집 별당 /

문을 여는 신랑.

방 안을 보더니 굳은 얼굴로 멈춘다.

방 가운데 신부 옷이 곱게 접혀 있고, 뒤뜰로 향하는 들창문이 반 쯤 열려있다.

신부 옷을 집어 드는 신랑... 족두리가 방바닥으로 떨어진다.

 

혜원 고을 근처 산길 /

남장 차림의 혜원. 패랭이 쓰고, 괴나리봇짐을 맨 채 정신없이 산길을 뛰고 있다.

언덕 위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는 혜원.

시끄러운 소리가 멀리서 들리고, 혜원의 집은 횃불을 든 남자들로 어지럽다.

혜원, 눈물을 흘린다.

 

혜원 오라버니... 강녕하셔요.

 

혜원이 집을 향해 곱게 큰 절을 올린다.

 

혜원의 집 대청 /

횃불 든 남자들이 사방으로 어지럽게 움직이고, “아씨~ 아씨!” 찾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로 시끄럽다.

횃불에 일렁이는 이사과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있다.

 

객점 /

대길과 오포교가 술상에 마주앉아있다.

 

오포교 식전에 심하게 당했다며?

대길 누가 그러우?

오포교 저자에 소문이 쫙 깔렸어. 천하의 이대길이 노비한테 칼 먹었다고.

대길 어떤 후레델노무 시키가 그래? 조금 긁힌 거 가지구.

오포교 똥을 싸나 방구를 뀌나 냄새나기는 마찬가지지. 안 그래?

대길 쉰소리 그만 하고 돈이나 내노슈. 은자 열 근.

오포교 어허! 낮에 나서 밤에 컸나, 사람이 왜 이렇게 깜깜해? 놓치지 않았나, 한 놈.

대길 한 놈 거 제하고 나머지 놈들 거라도 줘야지.

오포교 나랏돈이 그리 쉽게 풀리던가. 나머지 한 놈을 잡아야 상급이 나오지.

대길 됐수다. 물 만난 고기고 산 만난 호랑이우. 쉽게 잡힐 놈도 아니고.

오포교 왜에? 칼 한 번 먹더니 등골이 시원한가부지?

대길 (술잔 거칠게 내려놓으며) 에이 씨 진짜.

오포교 (일어서며) 그만 일어나네. 어여 가서 잡아 와. 덕분에 출세 좀 하세.

 

실컷 약올리고 일어서는 오포교. 대길이 거칠게 술을 따른다.

 

여각 대길의 숙소 /

대길과 최장군, 왕손이가 개다리소반을 두고 앉아있다.

왕손이는 회의는 별로 관심 없고 연신 하품만 하고 있다.

 

최장군 오늘 놓친 놈, 송태하라고 연전에 훈련원 판관을 지냈던걸.

18반 무예를 익혔으니 자네가 당한 것이 당연한 일이지.

대길 (버럭 화를 낸다) ~ . 당한 거 아니래두.

최장군 암튼, 군량미 빼돌렸다 걸려서 관노로 떨어진지 2년 정도 되는데,

대길 됐고, 어디 놈이래?

최장군 잡으려고?

대길 잡아야지.

최장군 그 놈... 검으로는 조선에서 일대일로 대적할 자가 없었다는 소문이네.

대길 그래서?

최장군 이번 일은 접지. 위험할 것 같으니.

대길 도망간 노비 치고 안 위험한 놈이 어딨어. (지도 펼치며)고향이 어디야?

최장군 칼이 위험하다는 말이 아니네.

듣기로는 청나라에 8년 있다가 죽은 세자랑 같이 돌아왔다던데, 예감이 안 좋아.

대길 청나라? 죽은 세자랑?

최장군 세자 죽고 한바탕 숙청이 벌어지지 않았나.

벼슬아치들과 연관돼 있을 것인데 공연히 벌집 건들 필요가 없지.

대길 궁궐은 궁궐이고, 저자는 저자야.

벼슬아치들이야 입으로는 백성이 자식입네 어쩌네 떠들어도, 밥그릇 싸움 하시느라 우리네들이 어떻게 살던 관심 밖인 거 몰라?

최장군 정치하는 사람 무시하지 말게. 세상에 제일 무서운 종자가 그들이니.

왕손 (하품 끝자락에) 그럼 얘기들 하시구, 먼저 갑니다..

대길 어딜 가는데?

왕손 계집들 음기가 충만한 시각에 방구석에서 지도나 보구 앉았을 수는 없잖수.

저자에 꽃향기가 진동하는데.

대길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지 말고 아예 하나 데리고 살던지.

왕손 (노골적으로 비웃으며) 여자란 말이우, 데리고 노는 건 쉬워도 데리고 살기엔 어려운 존재들이우. 알지도 못하면서...

 

더 들을 말 없다는 듯 바로 나가는 왕손.

 

최장군 저 놈 언젠가는 여자 때문에 사단 나지 않겠나.

대길 치마만 두르면 처녀건 과부건 가리지 않고 껄떡거리니...

(뜬금없이) 최장군은 새장가 들 맘 없어?

최장군 (괜히 지도 빼앗아 들고는) 언제 출발 할 건가?

대길 할 일이 하나 있으니 낼 저녁 때 뜨자고.

어차피 도망친 놈들 움직이는 길이야 딱 두 가지 밖에 없으니까.

최장군 이쪽 아니면 저쪽?

대길 아니, 거기 아니면 거기 근처.

 

지도 어느 곳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는 대길.

 

서삼릉 (소현세자 묘) /

전 씬 지도가 C.U. 되면서 실제 지형으로 바뀐다.

관리도 잘 되지 않은 초라한 봉분 하나가 있다.

봉분 앞에 무릎을 꿇는 송태하.

활 맞았던 어깨는 피에 젖어 옷이 온통 검게 변했다.

갈증과 피로로 갈라진 송태하의 입술, 목소리마저 탁하다.

 

송태하 저하, 왜 여기 누워 계십니까... 제가 왔습니다 저하...

 

엎드리는 송태하. 어깨가 조금씩 들썩이더니 점차 울음소리가 커진다.

 

심양관, 소현 집무실 /

자막 : 청나라 심양관

 

중국풍의 웅장한 건물이 보인다.

화려한 주단과 붉은 색 천이 드리워진 심양관 내부의 소현세자 집무실에서 용골대와 소현 세자가 바둑을 두고 있다.

열린 문 사이로 나란히 서서 경계근무를 서는 송태하와 일섬, 용이와 그의 부하들이 보인다. 소현과 용골대는 간간히 차를 마시며 얼굴엔 온화한 미소가 가득한데,

 

용골대 바둑을 보면 성품이 보인다 하였는데, 세자의 바둑은 부드러운 듯 하나 날카로운 것이 마치 벼락을 숨기고 있는 솜털구름 같군.

소현 당연하지요. 남아란 무릇 가슴에 칼 한 자루는 품고 산다 하지 않았습니까.

용골대 칼은 숨길수록 무서운 것이네. 그냥 담아 두게.

소현 이미 들킨 칼인데 숨긴다고 위력이 배가 되겠습니까?

차라리 대장군께서 꺼내어 갈아주심이 나을 듯 하지 않습니까?

용골대 내 목을 칠지도 모르는 칼을 나더러 갈아 달라?

소현 칼날이 방향을 못 잡아 방황하는 것 보다야 그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용골대가 미소를 거두고 바둑돌을 내려놓는다.

소현 역시 진정한 얼굴로 바라보는데,

 

용골대 마음을 잡은 것인가?

소현 심양의 팔왕(八王)께서 달포 전에 은밀히 은자 500냥을 건네주셨지요.

조선의 면포와 표범 가죽, 수달피, 그리고 괴화와 꿀을 구해 달라 했습니다.

용골대 어찌 할 예정인가.

소현 해야지요.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조선에는 면포와 가죽 말고도 종이와 약재, 생강과 담배와 같이 훌륭한 교역품이 많습니다. 청은 비록 금과 은이 많다 하나 물자는 턱없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대장군께서 두 나라의 교역을 확대하는데 막후에서 길을 터주시었으면 합니다.

조선에서의 일을 제가 책임을 지지요.

용골대 청이 중원 정벌에 나선 이상, 조선과 교역이 확대된다면 든든한 원군을 얻은 것과 다를 바가 없네. 하지만 그대 입지는 불리해질 것이야.

조선이 우리와 화친했다 하나 내부적으로는 명을 숭상하고 청을 배척하고 있지 않은가. 세자가 앞장서 청을 도모하지는 못할망정 교역을 추진하겠다?

(바둑돌 놓으며) 그런 걸 자충수라 하지.

소현 저의 입지가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장군의 장래가 두려워 그러시는 것 아닙니까?

항차 청의 가장 큰 적이 될지도 모르는 조선을, 무역을 통해 강국으로 만들었다...

용골대 하하하... 조선이 부국이 되어 병사와 말을 배불리 먹인다 한들 우리 청을 넘볼 수 있다 생각하는가?

소현 괴롭힐 수는 있겠지요.

용골대 그럼 다시 전쟁이지.

소현 그 전쟁을 막고자 그러는 것입니다.

용골대 교역으로 전쟁을 막는다?

소현 서로 필요한 것을 서로 필요할 때 정당하게 얻는다면 전쟁을 일으킬 필요가 없지요.

자고로 전쟁이란 최후에 선택하는 최악의 수단 아니겠습니까.

용골대 그대, 진정인가?

소현 (가슴을 손 얹으며) 여기 있는 칼, 함께 주인이 되자 그 말입니다.

 

소현을 바라보는 용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