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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용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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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거리 /

저자거리의 지저분함과는 달리 넓고 깨끗하게 정리된 육조 거리.

김흥서와 오만호가 나란히 올라탄 사인교 앞에 갈도가 우렁찬 소리로 길을 튼다.

 

갈도 물럿거라~ ~ 물럿거라~

오만호 더 몰아쳐야 하지 않습니까?

김흥서 명분을 쌓으면 이기는 싸움이야.

이참에 좌의정 날개를 꺾어버릴 것이니 모두 집으로 모이라 하게.

 

김흥서 표정이 비장하다.

김흥서 시점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길 양 옆으로 비켜나는 사람들 모습이 보인다.

 

 

객점 /

북적거리는 객점 안.

대길은 한 쪽 구석에서 조용히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방화백은 마의 등과 함께 정치 얘기를 하고 있다.

 

방화백 (낮은 소리로) 근데, 제주도에 퍼진 게 사실은 역병이 아니랴.

남자1 역병이 아니믄? 괴질인가?

방화백 (목소리 낮추며) 임금 손자들 셋이 거기 귀양 가 있잖어. 그 씨를 말리려고 조정에서 일부러 병을 퍼뜨린 거여. 대놓고 못 죽이니께 에둘러 죽이는 거지.

마의 에이, 설마.

방화백 이 사람이, 설마가 아니라니께. 소현 세자가 어떻게 죽은 지 몰라?

마의 병 걸려 돌아가셨지.

방화백 그게 아니라니께.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얼매나 건강하게 돌아왔어. 근데 두 달 만에 갑자기 병에 걸리더니 사흘 만에 가셨네? 나중에 보니께 얼굴이 흙빛이고 일곱 구멍에서 다 진물이 쏟아져 나왔대잖어.

(단호하게) 독을 멕인 거지!

마의 예끼, 이 사람아. 경 칠 소리 하고 있네.

방화백 환장하겄네. 딱 보면 몰러?

아들 독 멕여서 죽였지, 쫌 있다가 메누리 사약 멕여서 죽였지, 그 다음은 누구여. 손자들 차례 아녀? 그러니께 제주도에다가 역병을 확!

마의 쓸데없는 소리! 임금도 사람인데 아들 손자 며느리를 그렇게 죽이겠어?

방화백 니가 권력의 비정함을 알어? 말똥이나 치는 주제가 나서기는.

마의 말똥? 이노무 환쟁이가!

 

방화백의 멱살을 거칠게 잡는 마의.

하지만 이내 손을 풀고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보면 객점에 천지호와 만득이를 비롯한 대여섯 명의 험상궂은 일당이 들어서고 있다.

시끄럽던 객점 안이 일순 조용해지고, 일부 남자들은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천지호가 대길 맞은편에 앉고, 나머지는 대길을 둘러싼다.

 

천지호 간만이네. 요즘 벌이가 좋다며?

 

대길이 일어서려 하자 만득이가 대길의 어깨를 눌러 앉힌다.

 

천지호 숨겨둔 계집이라도 있나, 해 떨어진지 얼마 됐다고 벌써 일어서나.

대길 일이 있어 일어서려던 참입니다.

천지호 어디? 오포교 사타구니 핥아주러 가려고?

(무리들 낄낄거리고 웃으면) 술이나 한 잔 쳐봐.

 

대길의 술잔을 들어 내미는 천지호. 대길이 피식 웃으며 술을 따른다.

달게 술을 마시는 천지호. ~ 소리를 내며 술잔을 내려놓는다.

 

천지호 뒷간도 나이순대로 쓰는 법인데, 왈짜 밥 먹었다는 놈이 위아래 구분 못하면 어느 골목에서 칼 맞아 뒈질지 장담 못하는 법이야.

대길 공자님 말씀입니다. 알아 새기지요.

천지호 말까실리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대길 나 좋은 말로 하는 거 좋아하는 놈 아닙니다. 잘 아시면서...

 

천지호가 대길의 얼굴을 후려친다.

턱이 휙 돌아가는 대길,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턱을 어루만진다.

 

천지호 다 컸구나 대길이. 언니 말하는데 잘라먹을 줄도 알고.

(얼굴 툭툭 치며) 잊지 마라. 넌 내가 기르던 강아지야.

 

기막힌 표정으로 천지호를 바라보는 대길.

 

대길의 과거 : 화전 마을 /

대길이 숲 속에서 누군가를 주시하고 있다.

화면 넓어지면 옆에 만득이와 천지호 등이 있다.

그들 시선으로 포실하게 자리 잡은 화전민 마을의 너와집이 보인다.

어른들은 밭을 일구고, 아이들은 뛰어놀고, 아낙은 나물 캐는 정겨운 동네다.

천지호가 손짓으로 패를 나눠 잠입한다.

 

아낙과 나물 캐며 까르르 웃는 소녀 홍춘이.

아낙을 정겹게 바라보는 농부. 그러다 놀라 눈이 커지더니 소리를 지른다.

 

농부 추노다~

 

일시에 사방으로 도망가는데, 가는 길마다 천지호와 부하들이 막아선다.

낫과 쇠스랑과 괭이를 휘두르며 반항하는 도망 노비들.

하지만 천지호와 그 부하들은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며 노비들을 제압해 나간다.

 

홍춘이를 데리고 정신없이 도망가는 아낙. 대길이가 앞을 가로막는다.

어쩔 줄 몰라하던 아낙이 나뭇가지를 꺾어 자기 목에 댄다.

얼어붙는 대길... 아낙이 눈물 어린 눈으로 홍춘이를 보더니, 이내 손에 힘을 준다.

놀라는 홍춘과 대길...

 

그 때 천지호가 뛰어들더니 홍춘이를 옭아맨다.

대길도 뛰어들어 아낙을 지혈하는데 천지호가 호통을 친다.

 

천지호 뒈질 년 만져서 뭐 해 이 자식아. 빨리 다른 것들 쫒아.

대길 우선... 피를 멈추고 구명해야지요.

 

다시 대길의 얼굴에 날아드는 주먹.

 

천지호 저거는 돈 못 받는 거 몰라?

 

나동그라진 대길. 죽어가는 아낙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객점 /

천지호가 술잔을 내밀면 대길이 다시 두 손으로 공손히 따른다.

 

천지호 미꾸라지 천년 묵어도 용 되는 거 아니다. 다시 내 밑으로 들어와.

대길 에이, 호랑이가 어떻게 개 밑으로 들어갑니까.

천지호 뭐야 이 자식이

대길 먼저 일어나지요. 할 일이 있어서.

만득 이런 개아들 놈을 봤나.

 

일어서는 대길의 어깨를 잡는 만득.

대길이 만득의 손을 비틀어 내동댕이친다.

일시에 달려드는 천지호의 부하들. 한 편 막고 한 편으로는 방어를 하면서 유연하게 제압해나가는 대길.

천지호도 달려들었다가 발차기에 당하고는 환도를 뽑아 휘두른다.

대길 목쯤에서 챙강 소리가 나며 멈추는 칼.

대길이 예도를 반 쯤 뽑아들고 칼을 막고 있다.

천지호 부하들 모두 칼을 뽑고, 객점의 다른 사람들은 흥미진진하게 싸움 구경을 한다.

 

대길 피를 볼 참이우?

천지호 무릎 꿇어라.

대길 피 봅시다 언니.

 

먼저 덤벼드는 대길.

사방에서 칼이 날아오지만 대길은 예도를 방어하는 데만 쓰고 택견 기술로만 대적한다.

부하들이 모두 쓰러지고, 만만찮은 실력의 천지호마저 결국 무릎을 꿇고 만다.

대길이 예도를 집어넣으며 빈정거린다.

 

대길 상놈은 나이가 벼슬이라니, 앞으로도 언니 대우는 해드리지요.

(돌아보며 큰 소리로) 주모~ 술값은 우리 언니가 치룰 거요.

 

빙긋 웃어주고 객점을 나서는 대길.

 

박진사 집 후원 정자 /

후원 정자에 앉아 온갖가지 안주에 술을 마시는 박진사, 김진사, 두어 명의 양반네들.

식자의 유식을 자랑하며 한담을 나누는데, 열린 후원 문 사이로 거꾸로 매달려 있는 애꾸 모습이 보인다.

 

김진사 반노(叛奴)의 일로 심상(心傷)하여 분루(忿淚)가 종횡무진 하더니, 이리 추쇄하여 만분다행(萬分多幸) 올습니다.

(해석 : 도망 노비 때문에 열 받아서 눈물 날 지경이었는데 그나마 잡아서 다행입니다)

박진사 오동낙일엽(梧桐落一葉)에 농월(農月)이 창창(蒼蒼)이니 모두 감노불감언(敢怒不敢言) 아니었겠나.

(해석 : 하필 추수철에 도망가 얼마나 화가 났던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네)

김진사 사면춘풍(四面春風)에 축구서종(畜狗唑踵)이니, 이 어인 망()이란 말입니까.

(해석 : 노비한테 잘해줬더니 결국 뒤통수 얻어맞고 개망신 당한 꼴입니다)

양반1 가동주졸(街童走卒)에게 만단개유(萬端改諭)한들 우이독경(牛耳讀經) 아니겠습니까.

(해석 : 좋은 말로 한다고 들어 처먹을 것들이 아닙니다).

이제 가내(家內)가 화천월지(化天月地)니 한중진미(閑中眞味)의 파흥(破興)이 두렵습니다. 하하하.

(해석 : 이제 다 끝난 일이니까 술맛 떨어지는 얘기 그만하고 딴 얘기 하시죠?)

박진사 옳은 말일세. (김진사에게) 그나저나 금번에 영약효행(靈藥孝行)을 한다는 가담항설(街談巷說)이 있네만.

(해석 : 아버님께 좋은 보약 한재 올린다는 소문났던데?)

김진사 하하하. 영약효행이라니 가당치 않습니다. 아버님 기력이 쇠하셔서 침소(寢所)에 충년(沖年)의 계집아이 하나 넣어드릴 뿐이지요.

(해석 : 보약은 무슨, 회춘 하시라고 잠자리에 어린 계집 하나 넣어드리는 거지요)

박진사 어허! 효자불궤(孝子不匱)로세. 춘부장(椿府杖)께서 계피학발(鷄皮鶴髮)이니 백로위상(白露爲霜)에 고량진미(膏粱珍味)가 무슨 소용이겠나.

(해석 : 끝없는 효심이지. 날 추워지는데 맛난 음식 보다야 어린 계집이 최고 아니겠나)

양반1 충년이라시면, 그 계집이 방년(芳年) 몇입니까?

김진사 올해로 열 셋이 되었다 하지요?

박진사 좋구나! 꽃봉우리가 열리는 나이니 명약이 될 것일세. 하하하.

 

거꾸로 매달린 애꾸 위로 양반네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